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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 제로 시대에 딱!
‘숏폼Short form’ 콘텐츠

글 장재웅(동아일보 기자)

가수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 웹 드라마 ‘연애 혁명’, 웹 예능 ‘네고왕’. 이들 콘텐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길이가 짧다’는 것이다. ‘아무 노래 챌린지’의 경우 신곡 홍보 영상으로 총 길이가 15초를 넘지 않는다. 연애 혁명과 네고왕 역시 기존 TV용 드라마나 예능과 달리 영상의 길이가 10분 내외다. 이처럼 동영상 소비 방식이 모바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길이가 확 짧아진 이른바 ‘숏폼 콘텐츠’가 시장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숏폼 콘텐츠의 시작

숏폼 콘텐츠는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소셜 미디어나 대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짤’ 혹은 ‘밈(meme)’이라고 부르는 짧은 길이의 이미지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활발하게 공유된 것이 ‘숏폼’의 시초다. 그러다 2015년을 전후해 이런 콘텐츠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엿본 몇몇 기업이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면서 숏폼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발 빠르게 시장에 뛰어든 업체로는 미국 트위터가 론칭한 6초짜리 짧은 동영상 공유 앱 ‘바인(Vine)’과, 미국 버라이즌(Verizon)에서 내놓은 ‘Go90’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실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2018년을 전후해 서비스를 종료하게 된다.

‘틱톡’, ’1일 1페이지 교양서’의 공통점

이런 분위기를 바꾼 것이 바이트댄스였다. 중국의 바이트댄스는 ‘틱톡(TikTok)’을 2017년 9월 런칭했다. 틱톡은 출시 3년 만에 월평균 이용자 8억 명,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수 20억 회를 기록하며 바이트댄스를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의 스타트업으로 올려놓았다. 틱톡은 현재 150여 국가에서 75개 언어로 제공되고 있으며 2020년 1분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이자 4번째로 많은 매출을 발생시킨 앱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틱톡의 인기 덕분에 숏폼 콘텐츠 역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며 최근 몇 년 사이 SNS 활용, 방송 콘텐츠 제작 등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기업의 마케팅 방식마저 숏폼 콘텐츠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숏폼 콘텐츠의 인기가 동영상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콘텐츠 속성상 숏폼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도서 출판 시장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포착된다.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수업 365’ 시리즈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 등이 대표적인 숏폼 도서다. 이들 책은 방대한 양의 지식을 한 페이지 정도로 짧게 담아냈다. 예를 들어 역사,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하루에 한 페이지씩 365일 동안 읽을 수 있게 만들거나, 다양한 지식 분야를 장별로 짧게 요약해 담아내는 식이다.

‘포노 사피엔스’ 왜 짧은 영상을 선호할까?

숏폼의 인기는 IT 기술 발전의 산물이다. 과거 TV나 컴퓨터를 이용해 동영상을 시청하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영상 콘텐츠 소비 패턴이 스마트폰 중심으로 바뀌었다. 어디서나 동영상을 스트리밍으로 볼 수도 있게 됐다. 콘텐츠 이용자들은 1시간이 넘는 TV드라마나 영화 대신 어디서나 끊어서 볼 수 있는 짤막한 콘텐츠를 자연스레 선택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이끄는 건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이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쥐고 성장한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고도 불린다. 메조미디어가 조사한 ‘2020 숏폼 콘텐츠 트렌드’에 따르면 동영상 시청 시 선호 길이는 10대는 15.5분, 20대는 15.0분이었다. 15분을 넘으면 Z세대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숏폼 콘텐츠는 길이가 짧은 만큼 제작이 용이하고 퍼 나르기가 쉽다는 점에서 ‘참여’를 중시하는 Z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틱톡의 성공 요인은 누구나 쉽게 틱톡을 통해 동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유통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콘텐츠를 보는 것을 넘어 직접 의견을 남기고, 변주하는 등 ‘반응’할 수 있도록 한 숏폼 플랫폼의 전략이 통한 것이다.

속도의 시대, 깊이의 아쉬움

누구든 조금의 노력만 기울이면 접할 수 있는 콘텐츠의 수가 무궁무진하다 보니 더 짧고 더 자극적인 콘텐츠들만이 호응을 얻는 시대가 됐다. 이제 Z세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콘텐츠를 완주해야 한다’는 강박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다.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 그것들을 소비하며 재구성하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아쉬움도 적지않다. 꼭 보고 싶은 작품에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들여 곱씹으며 감상할 때 그 콘텐츠의 가치는 오래 남는다. 굳이 읽지 않아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지만 지적인 궁금증을 자극하며 완독한 고전 읽기가 주는 보람은 다양한 지식을 한 페이지로 요약 제공하는 교양 서적이나 카드 뉴스를 읽는 느낌과는 다를 것이다. 느릿느릿 와 닿는 ‘의미’보다 즉각적인 ‘재미’를 찾는 속도의 시대, 빠르게 휘발되는 즐거움과 천천히 고이는 즐거움의 총량은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