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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인문학
‘아파트’에 깃든
지금 여기의 삶

글 서윤영(건축 칼럼니스트)

편리함과 효율성이 깃든 현대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그 의미와 위상이 달라졌다. 인간의 ‘삶’을 담는 공간으로서 아파트의 역사를 짚어보고, 오늘날의 아파트에 깃든 다양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1 DOMUS & INSULA
아파트의 시초 – 로마의 도무스와 인술라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가량의 사람들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거실 하나, 부엌 하나에 방 3개가 딸린 85제곱미터의 아파트는 대중 주택이자 국민 주택이 되었다. 그렇다면 아파트는 언제 처음으로 지어진 걸까? 최초의 아파트는 고대 로마제국의 ‘인술라(Insula)’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 무렵의 로마는 방대한 속주를 거느린 제국이었다. 이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고, 주택 부족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로마의 부자들은 ‘도무스(Domus)’라고 하는 널찍한 단독주택을 짓고 살았는데, 일부를 임대하거나 2~3층으로 증축하여 세를 놓았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도무스를 헐고 임대 목적으로 4~5층짜리 집을 지었다. 1층엔 상점을 두었고 2층부터는 임대용 주택이었으니 요즘으로 치자면 4~5층짜리 상가주택과도 비슷했다. 로마의 부자들은 이러한 형태의 ‘인술라’를 새로 지어 임대수익을 올렸고 더 많은 세를 받기 위해 6~7층까지 증축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 어느 날 큰불이 났다. 네로 황제의 재위 기간, AD 64년에 일어난 로마 대화재였다. 화재는 일주일이나 계속되며 시내의 절반을 태웠고, 그 후 네로는 대대적인 로마 재개발을 실시한다. 아울러 인술라를 지을 때도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70피트(21미터) 이하로 짓도록 했으며, 불이 났을 때 옆 건물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0피트(3미터)의 이격 거리를 두는 지침을 마련했다. 또한 불이 났을 때는 이웃 세대로 대피할 수 있도록 모든 세대에는 발코니를 설치하도록 했다. 건물의 높이 제한, 이격 거리, 전 세대 발코니 설치 등은 현대의 아파트에도 지켜지고 있는 규정들이다. 2천 년 전의 로마에는 70피트라는 높이 제한에 따른 7층 아파트들이 즐비했지만, 로마제국의 쇠망과 함께 ‘최초의’ 아파트도 잊혀지게 된다.

로마시대 아파트 인술라의 재현도. (출처: 위키디피아)

2 UNITE D'HABITATION
현대적인 아파트의 원형

현대적인 의미의 아파트가 재탄생한 곳은 1920~30년대 유럽이었다. 당시 1차대전이 끝난 유럽 전역은 심각한 주택 부족 문제를 겪게 되고 이에 정부 차원의 해결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노동자들에게 빠른 시간 안에 주택을 대량공급하기 위해 6층짜리 판상형 아파트를 지었다. 충분한 햇빛을 받기 위해 침실은 동향, 거실과 식당은 서향을 한 일자형 아파트였다. 한편 1940년대 프랑스에서는 르 코르뷔제라는 건축가가 등장하여 항구도시 마르세유에 ‘유니테 다비타시온(Unite d'Habitation)’을 지었다. 이는 ‘Unit of Habitation’, 즉 주거단위라는 뜻으로 노동자를 위한 대규모 아파트였다. 커다란 필로티를 사용해 아파트 전체를 완전히 들어 올렸고, 아파트 내부에는 어린이 유치원과 상점을 두었다. 유니테 다비타시온은 현대적 아파트의 원형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러한 주거 형태는 1950~60년대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우리나라에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는 종암아파트(1958년, 서울 종암동),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1964년) 등이 있으며, 1970~80년대부터 잠실과 반포, 여의도 등 한강변에 본격적인 고층 아파트가 지어진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분당, 일산 등 대단지 아파트 위주의 신도시가 들어섰다.

3 LIFE & HOME
삶의 조건이 만드는 ‘집’의 모양

본래 유럽에서 아파트는 서민들을 위한 공동주택의 성격이 강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중산층 주택의 성격이 강했다. 전 세계에서 이렇게 아파트가 성공한 나라도 없어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된 데는 유럽의 아파트가 임대주택이자 사회주택인 반면, 한국의 아파트는 중산층을 위한 분양주택으로 공급했다는 정책상의 큰 차이점이 있다. 물론 이에 따른 부작용도 크다. 아파트가 손쉬운 자산증식의 수단이 된 것이다. 아파트 한 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수도권의 신도시에 집을 구해 놓고 도심의 직장으로 출퇴근을 하느라 하루에 몇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지 못한 팬데믹 현상으로 집의 가치가 바뀌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비대면 수업이 증가하면서 직장이나 학교 대신 집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졌다. 집은 본래 생산과 소비가 합치된 공간이었다. 전근대 사회에서 집은 일도 하고 생활도 하는 곳이었지만 산업혁명 이후엔 사무실과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20세기 사회는 집과 일터가 철저히 분리되었지만, 후기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집과 일터의 구분이 다시금 모호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생각보다 빨리 현실로 다가왔으며, 우리의 주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아파트는 거실과 침실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낮에는 학교와 직장에 있다가 저녁에만 돌아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 뒤엔 각자의 침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라이프스타일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낮에는 업무를 보고 홈 스쿨링도 해야 한다면 침실 외에 서재나 알파룸 등이 더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공간을 집안에 마련하기 힘들다면 단지 주민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유 오피스나 스터디 룸이 단지 내에 생겨날 지도 모른다. 물론 아파트 밖에서 추구하고 싶은 게 생겨난 사람들은 아파트를 떠나기도 한다. 사람들의 삶의 조건이 주거의 형태를 바꿔 갈 것이라는 의미다.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사는 곳’이 될 거라는 예측이 일찍이 제기되었다. 미래는 매일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기도 하지만 때로 외력에 의해 서너 걸음을 한꺼번에 떼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시점에 와 있고, 우리의 ‘집’도 그렇게 변화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