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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바로미터 ‘설렘’,
팬데믹 속에서도 움트는 희망

글 정여울(문학평론가)

사람들의 삶은 달라졌지만 봄의 풍경만은 여느 해와 다르지 않다. 전처럼 시끌벅적하진 않지만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에도 조심스레 희망이 움트고 있다. 결국 우리 삶을 추동하는 건 끝없이 고개를 드는 희망과 ‘설레는 마음’일 것이다.

SPRING, 회복하는 힘

그럼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팬데믹의 잔혹한 파도가 휩쓸고 간 뒤, 우리의 일상은 급변했다. 마음 놓고 모임을 가지는 것이 어려워졌고, 모든 행사나 절차가 간소화되었으며, 마스크는 하루도 빠짐없이 장착해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이제는 마스크가 없으면 오히려 허전한 느낌이 든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봄을 향한 설렘은 변함없이 돌아왔다. 오히려 이전의 그 수많은 봄들보다 더욱 애틋하고 절실한 느낌이다. 1년 전 봄보다는 그래도 낫겠지 하는 믿음. 올해는 그래도 마스크를 쓰고 방역을 단단히 한 채 조심스럽게 봄꽃 나들이를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 어느 때보다 정적으로 변해버린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설렘의 가능성을 약속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좁아진 반경 내에서 즐거움을 찾다

팬데믹 이후, 나는 모든 설렘의 작은 가능성들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첫 번째 설렘, 나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에 매우 민감해졌다. 벚꽃축제가 불가능해지자 길가에 핀 꽃들 하나하나가 더욱 소중하고 찬란하게 느껴졌고, 여름이 다가오자 초록으로 물드는 산과 들판의 싱그러운 속삭임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가을이면 더욱 알록달록하게 물드는 낙엽의 페스티발, 새하얀 설경 속에 눈부시게 저물어가는 노을의 아름다움도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멀리 여행을 떠날 수 없으니 동네 산책만으로도 볼 수 있는 꽃과 나무들이 시시각각 보여주는 자연의 소소한 풍경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꼭 비행기를 타고 멀리 여행을 떠나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됐다. 꼭 화려한 축제가 시끌벅적하게 벌어져야 흥미로운 것도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생활반경이 극도로 제한되었기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자연의 소담스러운 발걸음 하나하나가 내게는 경이로운 축복이자 선물처럼 다가왔다.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길을 포착하다

두 번째 설렘. 공식적인 일정이 줄어드는 대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삶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새롭게 바뀐 삶의 방식들이 또 다른 설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컨대 ‘온라인 수업’이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면 과연 강연장의 생생한 열기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막상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자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직접 볼 수 있는 오프라인 강의가 가장 좋은 방식이긴 하지만, 온라인 강연에는 뜻밖의 장점들이 많다. 나는 20년 전에 헤어진 친구를 온라인 강연을 통해 만났다. ‘정여울과 함께 하는 글쓰기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강연을 개설했는데, 20년 전 나의 친구였다가 연락이 끊어진 친구가 미국에서 온라인으로 내 강의를 듣게 된 것이다. 그리운 친구를 20년 만에 만날 수 있게 하는 온라인 강의, 미국이든 어디든 인터넷만 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강의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나 또한 강의를 하는 것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강연을 ‘듣는 설렘’에 빠졌다. 거리가 멀어서, 시간이 안 되어서,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두려워서 듣지 못했던 그 모든 강의를, ‘온라인 수업’으로 참여하니 그 모든 장애물이 일시에 해소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온라인 수업은 ‘집에서 할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집에서 강연을 하니 나는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편한 복장으로, 더욱 거리낌 없이 허심탄회하게 독자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이전’과 같을 수 없음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더 나은 방법을 찾아냈다.

잠시 멈춰선 곳에서 ‘자신’과 만나다

팬데믹 시대의 세 번째 설렘. 그것은 무엇보다도 ‘투명한 나 자신과 만나는 기쁨’이다. 지나치게 바쁜 스케줄 속에서는 아무리 마음 챙김에 집중해도 한계가 있다. 자꾸만 바깥세상에 현혹되고, 유행이나 대세에 민감해져 자기 자신의 진짜 마음을 돌보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내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좀 더 많아져서 그것만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스케줄에 바빠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내가 진정으로 돌보아야 할 소중한 꿈과 인연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돈을 버는 일에 바빠 꿈을 가꾸는 일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정말 잘 있는지’ 물어보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았다. 그것은 멀리서 온 낯선 손님을 만나는 설렘과는 또 다른 설렘, 즉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설렘이 아닐까. 누구나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여갈 때 새롭게 시작하는 설렘을 간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곤 한다.
이를 넘어서고자 여러 시도를 해보기도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마음 근육 탓에 쉬이 심드렁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계기를 통해 더 나은 것을 향한 상상력을,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설렘의 감정을 새삼 배워가고 있다.
우리가 더 깊고 따스한 눈으로 고통받는 모든 존재들을 보살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더 섬세하고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의 아픔을 보살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설렘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나와 타인과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를 보살필 수 있는 따스한 시선을 회복한다면, 새로운 세계를 향한 설렘은 그 어떤 재난 앞에서도 끄떡없이 샘솟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