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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의 시대 설렘,
‘재화’가 되다

글 신현암(팩토리8 대표, <설렘을 팝니다> 저자)

모델명만 검색해도 가장 저렴한 판매자에게서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발품대신 검색품을 들여가며 쇼핑한다.
‘호갱님’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가성비’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거다. 하지만 가성비의 정반대편에도 소비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곳에서 가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자들만 사는 동네도 아니다. 그곳을 장악한 정서는 바로 ‘설렘’이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봄이다. 코로나19 영향인지 동네 입구에 핀 어느 집 목련꽃부터 진달래, 개나리 같은 평범한 꽃들이 여느 때보다 반갑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기지개 켜듯, 사람들은 봄맞이 집안 정리에 한창이다. 어떻게 버려야 할까?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가 제안한 방법이다. 대개 사람들의 봄맞이 정리법의 중요한 기준은 ‘최근 1년 내 사용 여부’다. 최근 1년 내에 사용한 물건은 앞으로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다. 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동안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제품은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곤도 마리에의 생각은 다르다. 집안 정리하다가 우연히 빛바랜 추억의 사진을 발견했다고 하자. 지금은 성인이 된 당신 자녀가 20년 전 놀이동산에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당신 품에 안겨있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 말이다. 당신은 그 사진을 버릴까?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소중히 간직하며, 언제가 내가 죽을 때 함께 묻어 달라고 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번엔 반대 상황이다. 당신이 몇 달 전에 양복을 꺼내 입었다. 어느 틈엔가 뱃살이 나와 웃옷 단추가 잠기지 않는다. 외출 후 돌아와 옷걸이에 옷을 걸며, 살을 좀 빼야 할 텐데 하며 아쉬워한다. 최근 일 년 내에 입었던 것은 맞다. 그런데 별로 행복하지 않다. 양복이 한 벌만 있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버리는 게 맞다고 곤도 마리에는 주장한다. 설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장이 시켜서 한 일 - 가심비*

기업도 마찬가지다. 고객에게 설렘을 주지 않으면 버림받는다. 설렘을 주어야 고객은 구매한다. 그런데, 설렘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이다. 고객이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만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다면 어떨까? 필요하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사지 않을 것이다. 집에 선글라스가 이미 있다면 하나 더 구매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성은 그렇게 작동한다. 하지만 감성은 다르게 말한다. 그냥 사라고 한다. 혹자는 진열대에 놓인 선글라스가 ‘나 좀 데려가 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도 한다. 구매한 순간 뭔가에 사로잡힌 모양이다. 이게 설렘이다. 디자인일 수도 있고, 매장 분위기 일 수도 있다. 멋진 옷차림의 판매원일 수도 있고, 그 브랜드를 만든 오너(owner)의 경영철학일 수도 있다. 우리가 ‘기능적 필요(functional needs)’때문에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는 ‘그냥 사고 싶어서 (mental wants)’ 산다. 기업이 고객을 설레게 만들어야 매출이 발생한다.

설렘을 설계하는 자가 이긴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강조했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어떠한가. 경쟁사의 신제품 출시가 코앞에 다가왔다는 정보가 애플 마케팅 부사장 손에 들어간다. 그는 급하게 잡스와 미팅 시간을 잡고는, 지금 빨리 제품을 출시하지 않으면 시장 선점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다. 이미 제품은 완성되었으니 시급히 포장할 박스를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때 잡스의 한마디. ‘당신은 제품을 살 때, 제품을 먼저 보나? 아니면 패키지 박스를 먼저 보나?’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었던 부사장은 얼굴만 붉힌 채 잡스의 방에서 나왔다고 한다. 잡스는 제품 디자인을 넘어, 제품 패키지 디자인까지의 완성도와 그것을 받아볼 고객의 경험까지를 고민했던 것이다. 애플 스토어를 만들 때도 그랬다. 도심 외곽에 점포를 열었다가 망한 대형전자제품 유통매장의 사례를 모르지 않았던 잡스는 도심 한복판 ‘금싸라기땅’에 전자제품 유통매장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불과 애플 제품만으로 구색을 갖추면서 말이다. 다들 반대했지만 잡스의 생각은 달랐다. ‘애플다운’ 매장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비밀병기 지니어스 바(genius bar)를 두기로 한다. 애플 제품에 능통한 직원들이, 마치 친구처럼 자상하게 제품에 대해 알려줄 수 있도록. 잡스의 철학, 멋진 매장, 간직하고픈 충동을 일으키는 세련된 포장, 첨단지식으로 무장된 친절한 매장 직원. 설렘의 종합선물세트를 만들었던 게 이미 20년 전 일이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애플카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손짓으로 차선을 바꾸고, 전면 유리창에선 영화가 상영될 거라고 한다. 이 막연한 설렘을 실현해줄 방법은 단순히 기술에만 있진 않을 것이다.

특명! 소비자를 (웃게, 설레게, 두근거리게, 깜짝 놀라게) 하라

초등학교 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것이 소풍 가는 날 아니었던가? 소풍 전날에는 ‘제발 비 안 오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았던가? 돈을 내는 고객이 출시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출시일이 미뤄지지 않도록 바라주는 제품(또는 서비스)을 만드는 회사가 망할 리 없다. 가격이 비싸다고 안 살 리 없다. 오히려 비쌀수록 더 자랑스럽다. 제일 싼 것, 제일 많이 주는 것을 사는 ‘가성비’ 고객이 있는 한편 ‘내 심장을 떨리게 하는’ 것을 고대하는 ‘가심비’ 고객도 있다. ‘내가 좋으니까 플렉스(Flex)!’를 외치는 ‘나심비’** 고객도 공존한다. 이들 덕에 가격 저항마저 사라지니 제품만 확실하다면 경쟁 자체가 사라진다. 크건 작건 기업이 설렘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가심비 :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일컫는 말이다. 가격 대비 성능비를 의미하는 ‘가성비’의 반대에 있는 신조어.
**나심비 : ‘가심비’를 넘어 재화나 서비스를 누리는 ‘나’의 만족도에 초점이 맞춰진 신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