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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설렘을
기억하세요?

글 김소울(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 <치유미술관> 저자)

누구에게나 처음의 설렘이 있었다. 지금 나아가는 목표를 잊지 않게 만들어주는 설렘의 순간을 담은 애벗 그레이브스의 그림 <종잣돈>이다. ‘티끌 모아 태산’은 멀어 보여도 원대한 목표들엔 모두 ‘처음’이 있었다. 당신의 처음을, 설렘의 나날을 떠올려보자.

<종잣돈(The Nest Egg)> | 1910 | 애벗 풀러 그레이브스 | 81.2x116.8cm

두근두근, 통장 확인하기

“얼마 모였어? 이자는 얼마나 붙었어?”
인터넷뱅킹이나 스마트폰으로 은행 계좌를 실시간으로 접근하지 못하던 시절, 통장에 주기적으로 모은 돈이 얼마나 모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은 은행에 방문했다. 불과 10~15년 전만해도 그랬다. 약 110년 전 미국, 젊은 부부는 일년간 모은 적금을 확인하기 위해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왔다. 통장을 확인하는 시간은 오전 10시. 고생하면서 아껴 모은 돈을 확인하니 함박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당신이 진짜 고생했어. 우리 오늘은 분위기 좋은 데서 기분 한번 낼까?”
“그럼~ 나 지난번에 봤던 와플 맛있어 보이던 브런치 가게!”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볼도 분홍색으로 상기되어 있다. 정열의 빨간색이 순수한 흰색을 만나 수줍은 분홍색이 되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건 가장 높은 신뢰의 색이라 불리는 파란 색의 통장. 이 두 사람의 앞날에도 푸르른 희망이 엿보이는 듯하다. 이것은 미래를 함께 꾸려나가고 더 나은 삶을 살아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다. 함께 온 강아지도 통장 속 내용이 궁금한 것 같다. 평소와 달라 보이는 부부의 모습에 긴장했는지 꼬리를 말아 다리 사이에 넣고 통장을 올려다보고 있다. 주인님들이 신났으니 왠지 집에 가면 맛있는 간식이 나올 것 같은 기대도 된다.

지칠 때쯤 다시 꺼내 보는 설렘의 순간

오른쪽 뒤편에는 노부부가 서로 마주 보고 앉아있다. 함께 한지 수십 년이 지난 것 같은 이 노부부의 손에도 파란 색 통장이 들려있다. 노부부도 오늘 적금을 확인하러 온 것 같다. 바짝 붙어 통장에 집중하는 젊은 부부처럼 설레는 모습은 아니나, 그들이 떨어져 앉은 거리만큼 여유로운 모습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종잣돈이 커지는 것은 점차 당연한 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신나서 들떠있는 젊은 부부를 보며 노부부는 속삭였을 것이다.

“저 친구들 봐.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지.”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애벗 풀러 그레이브스(Abbott Fuller Graves)는 장식적인 야외 정원과 꽃 그림을 주로 그린 작가다. 따뜻하고 향기로운 정경이 담긴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컬렉션 작품인 <종잣돈>엔 선명한 스토리텔링이 담겨있다.
젊은 부부의 파란 통장 안에는 우리가 앞으로를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원동력이 되는 희망, 낙관하고 싶은 미래가 담겨있다. 혹여나 지금의 삶이 조금은 버겁다면,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이 자꾸만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던 처음의 감정을 떠올려보자. 분홍색이 가득했던 시간이 내게도 분명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