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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대의
조직 문화
우리는 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글. 김용섭 트렌드 분석가,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언컨택트> 저자

우리는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 살고 있다. 동시에 비대면 사회(Un-contact Society)로의 급속한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상시적이고 끈끈한 연결 같은 하이퍼커넥트와 비대면·비접촉을 얘기하는 ‘Un-contact’는 서로 반대의 의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둘은 서로 방법은 달라도 지향점이 같다. 그리고 이 둘의 연결은 우리의 일하는 방식이자 조직문화와 밀접히 연관된다.

초연결사회, 비대면에 대한 강력한 욕망

초연결사회는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센서 기술 등의 진화로 사람과 사물 등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를 말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연결되어서 끊임없이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다. 우리는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초연결 시대에 비대면과 자발적 단절 역시 중요해지고 있다. 사람과의 연결에서 오는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 감정 소모, 피로에 대한 거부다.
사람과의 직접적 대면 없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고, 오히려 타인과 직접 말을 주고받거나, 접촉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불편한 소통 대신 편한 단절을 선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국 사회는 과잉 컨택트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단 문화를 중시하고, 혈연, 학연, 지연의 인맥과 나이 중심의 위계 구조가 사람들의 관계를 지배한다. 이런 환경이 비대면의 욕망을 더 키워왔다. 비대면 사회에의 적응은 밀레니얼과 Z세대일수록 능숙하다. 반대로 기성세대들로서는 과잉 연결과 집단 문화의 관성에 오랫동안 젖어있다 보니 변화를 낯설어하는 경우가 있다.
1980년에 앨빈 토플러가 쓴 <제3의 물결>에 재택근무에 대한 미래가 그려졌다. 40년 전 앨빈 토플러의 예측은 20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재택근무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꽤 활성화됨으로써 현실이 되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예외였다. IT 인프라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가진 ‘만나야 일이 된다’는 문화적 속성 때문이다. 위계 구조 중심의 문화가 재택근무, 원격근무를 받아들이기 거부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 원격근무를 받아들인 기업이 늘고, 화상회의로 업무를 진행하는 직장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분명 낯선 불편함도 있었지만, 만나지 않아도 일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오히려 만났을 때보다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드러났다.
권위가 아닌 능력 위주로 업무가 되는 환경,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선 오히려 적당한 비대면도 필요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가도 원격, 재택근무를 유지할 기업이 많아질 것이다. 더는 사람이 사람을 직접 보고 감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일이 모두 데이터로 남는 시대다.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가 이뤄진다면, 안 보고 일해도 효율은 충분히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모든 것이 비대면인 기업에서 일한다면 어떨까?

20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한 오토매틱(Auto-mattic)은 워드프레스를 비롯해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다. 이 회사에서 만든 소프트웨어 사용자가 전 세계에 2억 명 정도인데, 4년 새 2배 늘었다. 2019년 9월 세일스포스(Salesforce)로부터 투자받을 때 평가받은 기업가치가 30억 달러였는데, 2014년 투자유치 때 10억 달러로 평가받았으니 5년 만에 기업가치가 3배 증가한 셈이다. 이 지표만 보더라도 확실히 성장 중인 기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 2월 기준, 1,170명의 직원이 70여 개국에서 일하는데, 본사 사무실조차 없앤 오피스 프리(Office Free) 기업이다.
모든 직원은 카페든 집이든 공유오피스든 각자가 선택한 공간에서 일한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면 되고, 일은 결과로 말하는 것이지 과정이나 업무 환경이야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홈오피스를 꾸미는 비용부터 공유오피스를 빌리는 비용, 심지어 카페에서 일할 때 마실 음료 비용까지 회사가 지원한다. 이 모든 것이 업무 비용이라고 보기 때문인데, 이런 비용을 다 합쳐도 대형 사무실을 운영하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 오토매틱의 입장이다. 회의나 업무적 커뮤니케이션도, 업무 관리는 물론이고 채용도 온라인 인터뷰로만 진행한다.
직원 채용은 5단계로 이뤄지는데, 서류 제출, 1차 면접(텍스트 채팅), 코딩 테스트, 트라이얼 프로젝트, 최종 면접(CEO와 텍스트 채팅)까지 다 끝내고 최종 입사 확정되는 데 5개월 정도 걸린다. 비대면이지만 대면보다 더 철저하다. 특히 트라이얼 프로젝트는 오토매틱 채용의 특징인데, 시급을 주면서 이 사람이 회사와 함께 일할 수 있는지 실제 업무를 해보면서 맞춰보는 과정을 거친다. 모든 채용 과정에서 직접 만나는 일도 없고, 심지어 화상이나 통화도 없다.
모든 것이 텍스트 채팅과 업무 테스트로 이뤄진다. 채용 과정에서의 비대면을 통해, 성별과 인종에 따른 편견을 방지하고 업무 능력만을 집중적으로 평가해 최고의 인재를 채용한다. 사실 오토매틱은 경력직 위주로만 뽑는다. 아무래도 원격근무 환경에서 신입을 키우는 일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는 점점 많아진다. 그렇다고 우리도 이 회사처럼 일하자는 게 아니다. 원격근무로도 비즈니스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예를 든 것이다.

권위가 지워지면 실력만 남는다

내용만 가지고 승부하니 문제가 되었다. 이것은 단지 온라인 수업 방식에 익숙지 않은 점에 따른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 강의에 익숙하고, TED를 비롯한 온라인 강연 영상을 숱하게 본 학생들의 눈높이를 과거 방식에 안주하던 교수들이 충족시키지 못해서다. 수업이 부실하다고 등록금 환불을 얘기하는 건 역사상 처음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미국에서도 그랬다. 비대면은 권위에 덜 짓눌리고, 대신 실력 중심으로 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 점을 원격근무와 화상회의 하면서 느낀 직원들도 많을 것이다.
수년째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중요한 화두였다. 기성세대가 구축한 과거 조직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밀레니얼 세대가 조직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기업 조직에서는 세대 갈등론이 불거졌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세대 간 갈등이 아니라, 과거 시대와 변화한 지금의 시대가 충돌하는 시대 갈등이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밀레니얼 세대, Z세대가 원하는 조직은 하나다. 자기 에너지를 다 쏟아부으면, 클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는 조직이다.
기업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일하는 방식에 늘 고민을 해왔지만, 한국식 조직문화의 관성을 쉽게 바꾸지 못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우연히 기업의 조직문화 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다. 가뜩이나 회식문화가 퇴조하고 있었고, 조직 내에서도 안티꼰대가 대두되며 상호 존중이 높아지고 있었는데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것이다. 비대면의 핵심은 대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면 없이도 일이 잘될 수 있도록 투명성과 효율성을 갖추는 것이다.
‘Un-contact’라는 단어가 주는 첫인상 때문에 오해하면 안 된다. 비대면은 서로 단절되어 고립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연결되기 위해서 제기된 트렌드다. 우리가 가진 연결과 접촉의 방식이 바뀌는 것일 뿐, 우린 앞으로도 계속 사람끼리 연결되고 함께 살고, 일하는, 서로가 필요한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은 변치 않는다. 그러니 조직문화에서도 뉴노멀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