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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편견의 시대
당연한 것이 당연해질 때

글 김용섭(트렌드 분석가,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싫존주의’ 라는 말이 있다. 싫어하는 것마저도 존중해달라는 의미로 MZ세대의 가치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뭘 좋아할지, 뭘 싫어할지도 개인의 선택으로 두지 않았다. 진학과 취업, 결혼과 출산에서부터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정해둔 모범 답안이 있었다. 하지만 MZ세대는 이를 거부했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서 외쳐야 할 것들에 대해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시대가 도래했다.

차별과 불공정을 거부한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받고, 서로가 다름을 인정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가치 있는 존재이고, 누구나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누구도 차별 받지 않아야 하고, 누구에게나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성 역할, 나이 서열화, 빈부와 인종, 외모 등에 있어 차별이 만연한 사회였다. 수십년 전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차별과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MZ세대’는 변화를 선택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MZ세대는 전세계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 한국적 특수성보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이해가 높다. 아울러 디지털 네이티브라 할 정도로 디지털 환경에도 밀접하다.
MZ세대는 온라인에선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다. 점차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의 힘이 커지는 시대에 그들의 목소리는 차별과 편견을 걷어내는 것은 물론 더 평등하고 더 다양한 가치가 존중 받는 데 일조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민주화 운동과는 다르다. 이들은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MZ세대가 말하는 ‘나의 행복’이란 ‘타인의 행복’도 보장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나의 가치를 위해 타인의 가치도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평등과 다양성은 이러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 어떤 세대보다 치열하게 살아야 할 그들에게 낙하산이나 부모 찬스는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악이다. 혈연·학연·지연으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걸 암묵적으로 받아들였던 시대와의 이별인 셈이다. 개인주의와 다양성을 지향하되, 불공정과 불평등은 거부한다.

좀더 다양해지고 있는 중이다

요즘 MZ세대는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유료 독서모임이나 취향을 공유하는 소셜 공간에서 사람들과 어울린다. 이곳에서는 상대가 몇 살인지, 직업이 무엇인지, 경제적으로 부유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취향과 지식을 공유하는 즐거움만 누리면 된다. 이런 수평적 소통은 기존 한국 사회의 서열화에 배치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나이와 성별, 인종 등에 대한 차별을 지우는 태도이기도 하다. MZ세대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 중에서도 권위를 내려놓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젊게 살고자 하는 X세대의 영포티가 대표적인 현상이다.
결혼은 필수라는 시선과 가정의 모습도 많이 변화했다. 자발적 비혼, 결혼 대신 동거,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에 이어 가사 노동과 육아휴직에 남녀 구분도 사라지고 있다. 어른이지만 키덜트족으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를 누리며 살고, 아이돌에 열광하는 중년 팬들도 당당히 덕질을 하며, 기업에서도 유리천장을 깬 여성 임원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대기업에서는 직급을 없애고 연차 상관없이 능력만으로 승진의 기회를 열기 시작했다. 조직문화에서 수평화는 필수 화두가 됐다. 이런 변화는 MZ세대만의 힘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이고, Z세대는 X세대의 자녀다. 즉 한국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으며 MZ세대는 변화의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과거에 비해 한국 사회의 편견과 불평등이 줄어든 게 맞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와 비교해보면 갈 길이 멀다. 정부의 고위직이나 기업의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고, 싱글과 비혼인구는 사회적 주류보단 비주류에 가깝다.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온라인에서나 현실 사회에서나 존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상황에서 우린 함께 살아가고 서로 어울리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분명 우리는 더 진화할 것이고 더 평등해질 것이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 더 행복해질 방법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