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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Paul Gauguin

글 김소울(미술치료학 박사, <치유미술관> 저자)

우리는 꿈,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어디까지 감행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포기의 대가가 달콤하지 않을 경우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살면서 우리는 문득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갈팡질팡할 때도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예술가들도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했고, 그 과정을 통해서야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그려낼 수 있었다.

  •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1890~1891 l 캔버스에 유채 l 38X46cm

  •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1897 l 캔버스에 유채 l 139 × 374.7cm

그림에 투영된 고갱의 삶과 예술관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은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한 증권거래소에 다니고 있던 평범한 남자였다. 아내가 있었고 아이가 있었다. 그림을 좋아했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여 주말에 즐기는 취미생활 정도였다. 그러나 돌연 35세가 되던 해, 그는 전업화가로서의 꿈을 현실화한다. 가족을 두고 그림을 그리러 떠나버린 것이다.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은 그가 새로운 도전에 대해 느꼈던 심리적 부담감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꿈을 쫓아가는 자신의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도, 안전함을 버리고 불안정한 세계로 뛰어드는 마음 사이에서 피어나는 갈등의 그림자가 고갱의 표정 안에 복잡하게 섞여있다. 그는 예술이라는 것이 초월적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림 속 예수님은 괴로워하고 있다. 독실한 신자도 있고 무신론자도 있기 때문이다. 고갱은 이 부분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은 분명 예술을 하고 있는데 그의 작품을 지지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누구도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소명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전부 바쳐 예술을 하겠다는 다짐을 그려 넣었다. 오른쪽 항아리에는 꾸며지지 않는 자신을 거침없이 투사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원시에 대한 갈망도 함께 담았다. 안정적인 가족과 직장이 아닌 불안정하고 고독한 예술을 선택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고갱은 자신이 느꼈던 예술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 한 장의 그림으로 잠식시킨다.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그 선택의 결과가 외면당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대비하게 된 것이다.

나를 찾으려는 시도, 마음을 단련하는 길

고갱은 새로운 예술을 위해 유럽이 아닌 원시의 섬 타히티로 떠난다. 그리고 타히티에서 보낸 2년여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을 들고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원시적이고 거친 그의 그림은 살롱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예술 세계를 인정받지 못하는 속에서도 고갱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나갔다. 투박하고 단순한 인물들은 마치 꿈결 속에서 움직이는 한순간을 포착한듯 환상적이었다. 고갱은 죽음이 가까워오면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한 질문을 화폭에 담아 관객들에게 던지고는 했다.
인간의 생애를 그려낸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는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이며, 행동과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또 어떤 보상을 바라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한다.
내가 어디서부터 오고 누군인지 알아야 하는 것은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곧 자존감을 형성하는 첫 걸음이다. 그동안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현대인들은 여러 가면을 쓴 멀티 페르소나로서 나는 누구인지 끝없이 질문을 되풀이할 뿐 ‘진짜 나’를 발견한다는 것은 아득하게 느껴진다. 고갱이 던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자신을 돌이켜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고갱이 자신을 숭고하면서도 거친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규정한 것처럼, 우리는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존재했는지, 자신의 소명과 사명감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깨달을 때, 스스로에 대한 존중감과 믿음이 만들어진다. 나를 찾아 찾아내는 시도만으로도 우리는 삶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다질 수 있다.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시간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