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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자기표현’ 욕구,
판을 만났다

글 김봉석(대중문화평론가)

과거 “내가 살아온 이야기만 해도 책 한 권은 나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책을 내지 않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블로그,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는 무수하게 널렸고,
오프라인에서 책을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현대인의 ‘자기표현’ 욕구는 어디서 나왔으며,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을까?

물 만난 고기 = 소셜 미디어를 만난 범인(凡人)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좋아하는 것을 널리 표출하는 일반인이 많아졌다. 취미를 파고들어 전문가가 된 사람들도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글을 쓰다가 브런치에 쓰게 되고, 출판사와 계약해 책을 내기도 한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다가 전문적인 의뢰를 받기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밤에는 웹 소설을 쓰거나 유튜버가 되는 사람도 있다.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도 자신의 욕망이나 흥미를 좇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 20세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지금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표현하는 시대가 된 것은 인터넷의 대중적 보급이 매우 중요했다. 인터넷 이전을 떠올려보자. 개인의 주장과 생각을 미디어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작가라면 등단을, 기자라면 언론사에 입사를 해야 했고, 학자는 대학원을 가서 석·박사를 통과해야 했다. 그래야 공인된 매체에 시와 소설을 쓰고, 기사를 쓰고,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인터넷은 지식과 매체의 민주화라는 선물을 가지고 왔다. 무한대의 정보가 있고, 대체로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다. 정보를 구할 수 있는 돈과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누구나 매체를 가질 수 있게도 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칭하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는 단순히 관계를 맺는 것을 넘어 개인이 자신의 매체를 활용해 세상에 ‘발신’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에서는 최근 부활을 예고한 ‘싸이월드’가 시초였다. 자신만의 공간이자 무대인 ‘미니홈피’를 갖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간 장소나 먹은 것을 카메라로 찍어서 올리고 순간의 감상이나 생각들을 적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설정해 취향도 드러냈다. ‘내가 누구인지 보여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었다. 이후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틱톡 등이 속속 등장했다. 블로그는 긴 글, 트위터는 140자 이내의 짧은 글, 인스타그램은 이미지, 틱톡은 동영상 그리고 페이스북은 친구를 맺으면서 글을 통해 관계를 맺는다. 최근에는 오디오로만 대화를 나누는 클럽하우스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전문가, 유명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혀 유명하지 않았던 일반인이 수십, 수백만의 팔로워를 모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왜 인기가 좋은지는 따져볼 일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역사상 가장 자아가 비대해진 시대

그렇다고 긍정적인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셜 미디어의 특징을 일컬어 ‘인스타그램은 자랑질, 트위터는 지적질, 페이스북은 친목질’이란 말이 있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이 화사하고 풍요롭다. 다들 멋진 곳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비싼 물건을 소유한 것만 같다. 페이스북에서는 유명한 사람 누구를 만나서 찍은 사진을 올린다. 이 사람도 알고, 저 사람도 알고. 이렇게 표출되는 화려한 모습을 보면서 박탈감이나 우울함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나는 이렇게 피곤하고 힘든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매일 즐거운 것일까’. 반대의 경우는 보여지는 나와 진짜 나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피로를 토로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에 보이는 모습이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다. 중국에서는 회비를 모아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을 빌리거나 고급 음식점에서 비싼 음식을 주문하고 회원이 돌아가며 사진을 찍는 모임이 생기기도 했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에서는 다른 사람이 쓴 글과 찍은 사진 등을 훔쳐다가 자신의 것인 양 과시하는 일도 벌어진다. 결국 겉으로만 보이는 허상에 끌려 다니는 격이다.
자유로운 표현에서 오는 부작용도 따른다. 누군가 한 말에 대해 꼬투리를 잡아서 일제히 공격하고 비난하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 주로 익명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욕하고 조롱하는 행위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싫은 것만을 생각하고, 자신이 옳다고만 주장하며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게 된다. 혹자는 지금이 역사상 가장 자아가 비대해진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든 정보를 구할 수 있고, 어떤 주장이건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자신이 대단하다는 자의식 과잉에 빠지는 것이다.

자유롭고 소신 있게, 나를 보여주고 있는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전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우린 그동안 자기 얘기를 드러낼 곳 없었던 이들의 다양하고 솔직한 목소리를 통해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귀한 정보를 얻었고, 이들의 삶에 대해 공감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동시에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독선과 아집이다. 나만이 옳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자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뭔가 거대한 성취를 이룬 사람만이 아니라 평범한 나의 생각도 소중하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을 우선 말해야 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소신 있게 말하고, 타인의 말을 듣고, 그리고 다시 새로운 생각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한걸음 전진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