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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스웨그SWAG
우리 것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

글 박희아(대중음악평론가)

최근 한국 음악계에선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융합이 눈에 띈다. 한때 유행했던 퓨전 국악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고 경험한 세대가 뮤지션으로서 자신들만의 것을 선보인 것이다. 판소리 가락에 화려한 비주얼 이미지와 춤을 가미한 밴드 ‘이날치’, 한국의 굿 음악을 밴드와 디제잉으로 뒷받침하는 추다혜차지스는 ‘우리 것’을 ‘첨단의 방식’으로 표현해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 급 비주얼과 사운드

“동영상 누적 조회 수 5억 뷰!” 언뜻 이 말만 들으면 우리는 방탄소년단(BTS)이나 블랙핑크처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은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동영상을 만들어 한국 음악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이날치를 소개하는 MBC <라디오스타>의 MC 멘트였다. 방송에 출연한 이날치의 두 보컬, 권송희와 신유진은 다른 출연자들 못지않게 흥미로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심지어 자신들의 새 음악 ‘여보나리’를 공개하기까지 했다. 사실상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뮤지션이 아닌 이상,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신곡을 먼저 공개하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이날치는 누구보다도 큰 관심을 받으며 이 일을 해냈고, ‘대중가요이자 K팝이란 무엇인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셈이 되었다.

이날치, ‘한국의 얼’을 독창적으로 해석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삽입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인기 아이돌과 인기 배우들도 쉽게 꿰차기 힘든 CF까지 찍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중요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점은 이날치의 인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의 얼’을 활용하는 특별한 방식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음악가들로 구성된 이 밴드는 판소리를 바탕으로 팀의 콘셉트를 잡았고, 여기에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독특하지만 때때로 기괴하게 다가오는 춤사위를 더해 자신들의 독창적인 지향을 보여주었다. 이 팀에는 안이호, 막내 신유진 외에도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 음악감독, 이미 수년 전에 국악의 특장점을 내세운 음악으로 해외 음악시장에서 먼저 주목받았던 밴드 씽씽의 드러머 이철희, 국악 신(scene)에서 꾸준히 판소리를 선보이던 권송희, 이나래와 같은 멤버들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앨범 <수궁가>를 통해 ‘범 내려온다’라는 후크(hook)가 중심이 되는 곡부터, 판소리의 장점을 한껏 살린 ‘약성가’, ‘별주부가 울며 여쫘오되’와 같은 곡들까지 들려주며 판소리라는 장르의 변주를 마음껏 시도하며 ‘낭자한 풍악 소리 수궁이 진동(‘약일레라’)’하는 수준의 인기를 스스로 만들어 냈다.

추다혜차지스, 굿판으로도 음악적 변주가 가능하다고?

이날치 외에도 씽씽의 보컬이었던 추다혜가 만든 추다혜차지스의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추다혜차지스는 이날치와는 달리, 서도민요와 굿판의 음악인 무가를 뒤섞어 훨씬 더 기묘한 공기를 조성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굿판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 독특한 밴드의 음악 세계는 이날치가 그랬듯 한국 대중가요와 K팝이라 불리는 장르에 한층 도발적인 태도로 질문을 던진다. 마치 ‘이런 음악 들어봤어?’ 혹은 ‘이런 음악 봤어?’라고 직설적으로 묻는 듯한 영상 속 추다혜의 눈빛은 신명 나게 흔드는 방울 소리와 섞인 펑크, 레게, 덥(dub) 등 많은 장르와 함께 자연스럽게 대중을 홀린다. 어쩌면 아무도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굿판의 노래를 가져와 실제로 굿을 하는 현장에 와 있는 듯이 자유롭게 가사를 바꾸고, 귀신을 불러내듯이 몸을 자유롭게 흔드는 그의 모습은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라는 이름으로 다소 낯설고 오싹했던 한국의 얼을 대중 앞에 선사한다. 펑키한 리듬 아래 간혹 두드러지는 베이스의 소리는 마치 이 음악을 들으며 두근대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향유하는 이들까지 ‘힙’하게 만드는 젊은 예술가들의 표현법

말은 곧 표현이다. 이날치와 추다혜차지스의 가사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과거의 것과 트렌드를 마구 뒤섞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시대의 말이 표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밖에 없게 된다. 두 팀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늘 지루하다는 평가 아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혹은 완전히 변방에 있었던 음악을 마음껏 변형시킨 자유로운 예술가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들의 등장과 부상은 한국 대중음악의 놀라운 확장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동시에 두 팀의 활동 양상은 스스로에 대한 PR을 얼마나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상대방의 점수를 매기는 2021년의 세계에 대한 매우 급진적인 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날치와 추다혜차지스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음악으로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소셜 미디어 바깥으로 나와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화려하고 힘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내 삶의 예술가’가 되라고. 전 세계를 향해 이 두 팀의 음악을 들려주며 자신 있게 제안할 수 있는 ‘코리안 스웨그’의 양상은 이토록 건강하고 화려하기까지 하다. ‘한국의 대중가요이자 K팝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넘어서서, 내가 나의 것을, 우리가 우리의 것을 얼마나 독창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음악이 입은 새 옷만큼이나 우리도 멋진 새 옷을 입을 수 있다고.

‘내 삶의 예술가’가 되라고. 전 세계를 향해 이 두 팀의 음악을 들려주며 자신에게 제안할 수 있는 ‘코리안 스웨그’의 양상은 이토록 건강하고 화려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