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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재워드립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수면 산업

글 노승욱(매경이코노미 기자)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면산업의 규모는 2012년에서 2019년 사이 7년 만에 6배 이상 성장했다.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수면시간이 짧은 나라답게 양질의 숙면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기술과 접목된 ‘슬립테크’, 어디까지 왔을까?

‘잠 부족 국가’의 블루 오션 슬립테크(Sleep Tech)

‘잠이 보약이다.’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의학적으로 증명된 ‘팩트’다. 수면 상태에서는, 신진대사 중 손상됐던 세포들이 회복을 시작하고 뇌에 축적된 여러 부산물이 제거된다. 반대로 수면 부족은 질병에 가깝다. 고혈압, 심혈관 질환, 당뇨, 비만 등 만성질환 가능성을 높이고 우울증도 야기한다.
하지만 바쁜 업무와 스트레스 탓에 현대인은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더구나 한국은 대표적인 ‘잠 부족 국가’다. 한국인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OECD 국가 하루 평균 수면시간(8시간 22분)보다 41분이나 적다. 수면장애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불면증 환자 수는 2015년 34만 6,000명에서 2019년 63만 3,000여 명까지 늘었다.
최근에는 기술로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이른바 ‘슬립테크(Sleep Tech)’다. 수면(Sleep)과 기술(Tech)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수면 상태를 분석하고 숙면을 도와주는 기술을 말한다. 수면 산업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슬립테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서는 2017년부터 슬립테크관을 별도로 마련해 운영할 정도다. 국내외 수많은 기업은 오늘도 밤을 지새우며, 소비자의 ‘꿀잠’을 돕는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양한 숙면 가전 기술 맛보기

슬립테크 제품은 침대에서부터 이마에 장착하는 소형 장치까지, 각양각색이다. 침대 제조업체 ‘슬립넘버’가 선보인 ‘스마트 침대’는 내장된 수면 센서를 통해 사용자의 수면 상태를 파악하고 쾌적한 숙면을 유도한다. 자는 동안 수면에 최적화된 온도를 제공하고 수면 자세를 파악해 침대 높이부터 매트리스 쿠션감까지 조정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코를 곤다면 침대에 포함된 공기의 양을 조절해 머리 부분을 천천히 올려 코골이 증상을 완화하는 식이다.
스마트 침대도 종류가 많다. 코웨이가 판매 중인 스마트 침대는 120개 공기주머니가 사용자 체형과 체압을 감지해 형태를 자동으로 바꾸는 것이 특징이다. 램핏의 스마트 베개 ‘지크’는 미세한 진동으로 코골이는 멈추게 하고 베개에 내장된 무선 스피커로 음악, 북 팟캐스트, TV 등을 들으면서 잠들 수 있다. 온도 조절은 물론 앱과 연동해 수면 주기, 수면 지속 시간 등 수면 습관 확인이 가능하다.

웨어러블 수면 마스크로 ‘뉴로온’. 체온, 뇌파, 안구 운동, 맥박, 근육의 긴장도를 기록해 수면시간을 최적화한다

스마트 안대도 나왔다. 미국 인텔클리닉이 개발한 ‘뉴로온(NeroOn)’은 빛을 이용해 양질의 수면을 돕는다. 빛을 차단하는 일반적인 안대와 달리 뉴로온 스마트 안대는 사용자 얼굴에 LED를 쏘는 ‘빛 치료 기술’을 적용했다. 피부 접촉 전극을 통해 사용자 맥박과 뒤척임은 물론 뇌파와 체온 정보를 측정해 수면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이 선보인 조명기기 ‘라이트 사이클’은 지역을 입력하면 위치와 날짜, 시간 등의 정보를 종합해 자연광에 가까운 최적의 색온도와 밝기를 찾아준다. 지속적인 빛 조절을 통해 수면 주기를 제어하는 멜라토닌 분비에 도움을 준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닉스’의 ‘고슬립’은 그야말로 ‘수면기’다. 강의실, 차량 내부 등 밀폐된 실내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할 때 졸음이 발생하는 현상을 역이용해 사용자를 재워주는 수면 가전이다. 이산화탄소 농도를 증가시키는 혼합기체를 분사하고 잠이 잘 오는 소리와 향을 뿜어 수면 환경을 조성한다. 안전 걱정도 없다. 모든 이산화탄소가 누출돼도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는 1% 이상 오르지 않게 설정됐다. 체내 이산화탄소 농도(4%)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수면 습관을 기록하고 데이터화하는 기술도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베더’는 이마에 부착하는 작은 장치 하나로 사용자의 모든 수면 관련 데이터를 수집한다. 장치를 붙이고 잠을 잔 뒤 아침에 일어나면 수면시간, 수면무호흡증 여부, 산소 레벨, 심장박동, 수면 자세, 자세에 따른 수면의 질 등 다양한 정보가 기록된다.
미국 스타트업 ‘내닛’은 아기 건강에 노심초사하는 부모를 위한 제품을 개발했다. 아기에게 내닛이 선보인 ‘아기보’를 입히고 카메라를 설치하면 실시간으로 아기 수면 상태를 측정해서 보여준다. 단순히 자는 모습만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의 수면의 질, 수면 시간, 심장박동수를 기록하고 실시간 온도와 습도 알람도 계속 업데이트한다.
수면 관리 플랫폼 ‘다이브’는 이마에 뭘 붙일 필요도, 아기보를 입을 필요도 없다. 다이브는 오로지 매트리스 내에 있는 센서로 수면 환경을 모두 모니터링한다. 수면에 드는 시간과 기상은 물론 호흡, 맥박도 자동으로 인지한다.
슬립테크 산업은 앞으로도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시장은 더 그렇다. 국내 수면 산업 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 약 3조 원대. 지난 2012년(5,000억 원)에 비해서 급증하긴 했지만 중국(46조 3,000억 원), 미국(45조 원), 일본(9조 원)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턱없이 작다. 반대로 얘기하면 향후 발전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얘기다. 수면 전문가 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원장은 “국내 수면 산업과 슬립테크는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다. 새로 개발한 제품의 효과를 테스트하기 위해 침구·전동 의자·IT 스타트업은 물론 가전 대기업까지 수면 센터를 찾는다. ‘꿀잠’을 돕는 수면 가전은 앞으로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