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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츠러든 희망을
다시 바라볼 때

글 김소울(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 <치유미술관> 저자)

<태양> 1913 | 캔버스에 유채(벽화) | 450x772cm

태양은 ‘떠오른다’

푸른 지평선 너머로 둥근 해가 막 전체의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따듯한 햇살이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밤을 아침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순간이다. 바위 구석구석까지 태양의 빛줄기 끝이 닿아있고, 광활하게 펼쳐지는 생명의 덩어리는 깨질 듯 부서지면서도 눈부시게 포근하다. 지금 우리 중 태양의 움직임이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태양이 ‘떠오른다’고 표현한다. 눈부시게 밝은 빛을 머금은 해가 매일 다시 돌아와 우리를 비추는 그 시간에서 희망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하루를 마감하고 태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인류의 생활 패턴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맹수와 경쟁을 해야 하는 밤 시간 대신 낮 시간에 음식을 찾아다녔고, 털이 아닌 땀샘을 발달시켜나갔다. 아침이 온다는 것은 다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고 추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고마운 희망의 신호였다. 태양은 숭배의 대상이 되거나, 일부 지역에서는 신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 밝음과 따듯함이 계속해서 다시 돌아와 우릴 찾아주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만든 결과였다.

다시 돌아온다는 믿음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듯,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것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시간을 맞이할 자격이 있다. 뭉크가 오슬로 대학교에 벽화로 완성한 작품 <태양>(1913)은 불안정한 감정을 오랜 시간 지니고 살아온 한 사람이 아픔을 딛고 발견한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경쇠약과 우울증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던 뭉크는 대표작 <절규>(1893)에서 그려냈던 불안과 절망에 결코 잠식되지 않았다. 20년 후에 그려진 <태양>이 그 사실을 보여줬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며 앞으로의 시간은 과거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살아오면서 각자의 시간 속에는 다양한 굴곡들이 있었을 것이다. 걸음마부터 시작하여 공부와 일, 인간관계까지 우리의 삶은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 시간은 지나갔고, 그 이후에도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좋은 시간들이 우리 삶에 존재해왔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과거의 내가 얼마나 오래, 혹은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머물렀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냈는가에 관한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린 분명 다음을 살아왔고, 과거의 모습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했던 때에, 그 어둠의 흔적을 지워냈던 과거 나의 태양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간을 견뎌내고 치유할 수 있었던 자랑스러웠던 과거의 나에게 한 번쯤 되물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추위와 어둠이 반드시 사라진다는 믿음이, 봄과 아침을 만나게 해주듯, 절망을 사라지게 만들어주는 것은 희망에 대한 믿음이 될 것이다.